우리는 모두 통 속의 뇌여야만 해 (2022)


9중주와 사운드 설치를 위한 “우리는 모두 통 속의 뇌여야만 해” (2022)
연주 Ensemble Radiant 8

‘통 속의 뇌’는 우리의 감각이나 지식 등이 어떤 불가항력적인 존재에 의해 조작되고, 우리는 그저 그 조작에 따라 판단하게 된다는, 데카르트의 악마 가설의 발전된 버전인, 철학자 Hilary Putnam의 사고 실험이다.
뇌를 몸에서 분리하여 통 속에 넣고, 컴퓨터로 전기 자극을 주입하여, 뇌가 가상의 환경을 느끼도록 만든다면, 뇌는 자신이 진짜 몸을 가진 사람으로 존재하며 살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로 인해 우리는 그저 주어지는 자극에 반응하고 있을 뿐인 통 속의 뇌인지, 아니면 진짜로 온전한 사람으로서 살고 있는 건지 의심해보게 된다.
원래 이 가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이 모두 거짓이고, 그냥 어떤 미친 과학자의 실험일 뿐이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을 주는 개념이었지만, 요즘 한국 넷상에서는, 이 개념이 반대의 의미로 ‘내 인생이 현실이면 어떡하지? 차라리 내가 통 속의 뇌였으면 좋겠다.’ 하는 밈이 되어 버렸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만족스럽지 않고, 이미 망했다고 느껴져 후회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차라리 내 인생이 거짓이고 내가 통 속의 뇌였으면 하는 웃기면서도 슬픈 반전적인 소망이 된 것이다.
나도 이 밈을 보며 많이 웃었고 팬데믹 이후로는, 이것에 격하게 공감하며 나도 차라리 통 속의 뇌가 되고 싶다고 인터넷의 사람들과 함께 외쳤다.

온 세상이 병에 걸려 있을 때 예술가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공허함과 무기력에 시달렸고, 여태까지 세상을 위하여 무엇을 이뤘는가 자책했다.
혹은 어떤 미친 과학자가 전기 자극으로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어야만 해.
혹은 어떤 미친 과학자가 전기 자극으로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믿어야만 해.
혹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믿게 되기를 소망해야만 해.
혹은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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